모든 이야기는 어느 금요일 밤, 이 트윗에서 시작되었다.


조임정, 2011. 08. 23, "김정일, 9년만의 방문…러시아의 카드는?", 『이데일리』,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DA37&newsid=02381286596350272&DCD=A01506&OutLnkChk=Y




상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둠의 기운





글쎄, 저 트윗을 보고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정말 없나?'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조갑제 선생님 정도 되는 분이 웬만한 확신 없이 이런 일을 벌이셨겠냐는 것이다. 이윽고 떠오른 생각. 김용민 후보는 북한을 비판한 적이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떤 말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내 기억 속에는 교수 김용민의 북한 비판이 남아있었다. 물론 조갑제 선생님께서 요구하신 건 북의 삼대 지도자에 대한 것이었지만, 북한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사람이 세 지도자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으랴. 그래서 즉시 찾기 시작했고, 곧 찾았다.

정확히 13분 만의 쾌거였다. 물론 검색과 동시에 나온 건 아니었다. 단순 게시물이나 카더라가 아닌 빼도 박도 못하는 분명한 증거가 필요했고, 제도권 언론의 기사에서는 확실히 보이지 않는 듯했다. 애당초 그렇게 쉬운 것이었다면, 조 선생님께서 수배를 내시지도 않으셨겠지. 그래서 조금 발상을 돌려 영상 자료를 확인하기 시작했고, 의외로 몇 개 지나지 않아 해당 발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 잠시 그 내용을 확인해 보자.

(5:03) 하여간 뭐 지금 김정일 위원장 같은 경우는 외교 수는 아니고, 본인이 징크스가 있어 가지고 열차를 타고 간 거 같은데, 말씀하신대로 2000년 이후 이번까지 7차례 중국 방문 때에 모두 특별열차를 이용했고, 2001년에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하면서 24일이나 열차를 탔습니다. 모스크바 가려면 (수행하는 비서들이 힘들겠어요.) 그렇죠. 뭐 하여간 비행기 타면 한번에 아주 OK인데, 그럴 수가 없다는 겁니다. 하여간 이런 테러에 대한 염려, 공포. 원인이 뭐겠습니까? 누군가 나를 공격할 것이다는 그런 공포, 두려움이 있는 거죠. 그 두려움은 뭐겠습니까. 통치기반이 확실하지 않다. 이런 거죠. 인민들을 얼마나 괴롭혔으면은, 아 나한테 복수를 할 것이다. 이런 초조한 마음들이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움의 한 표시로서, 이렇게 말하자면은 내부 관리, 통제, 이걸 하려는 것이죠. 김정일 위원장의 바로 그런 모습인데, 장기간 동안 해외를, 자기가 통치하고 있는 나라를 비워둔다. 그 사이에 반란이라도 일어나면 어떡할 것인가. 우려할만도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또 러시아, 이렇게 방문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위원장이 인민들을 괴롭혔다... 그 말인가?

사인북은 못 받았다.
그런데 이후 조갑제 선생님의 답변이 없었다. 사실 나는 저때까지만 해도 책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면 조갑제 선생님께서 언급하신 '욕'은 김용민 후보가 미국의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에게 가한 수준일 거라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실제로 이를 들어 항의한 사람이 몇 있었다.) 그러나 조 선생님은 이것을 해당 트윗에 명확하게 표시하지 않았고, 나는 그 틈새를 파고든 셈이었다.

한동안 답변은 물론 트윗도 없으시길래 컴퓨터를 끄셨나 했더니 곧장 리트윗을 하신다. 나는 이대로 무시당하고 끝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리고 엊그제 진짜 책이 왔다.


나라가 걱정될때 조갑제닷컴.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가 함께 찍힌 건 순전히 우연이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8권의 색깔이 약간 이상한데, 실제로도 저렇다. 조갑제 선생님, 이거 불량인가 봐요. 교환해주세요.

한 근대화 혁명가의 비장한 생애

깨알 같은 책 광고. 이참에 살까 고민만 하다가 그냥 안 샀던 책 두어 권을 구입할 생각이다.
조갑제 선생님은 왜 김용민 후보의 북한 삼대 지도자 비판 발언을 수배한 것일까. 사실 누구나 유추가 가능할 것이다. 그렇기에 아쉽다. 한 사람이 모든 분야를 인식할 수는 없고, 그렇기에 모든 분야에 대한 발언을 할 수도 없다. 괜히 국회가 여러 위원회로 나뉘어 있는 게 아니잖은가. 당장 나만 해도 동물권이나 탈핵을 비롯한 녹색 감수성이 부족하고, 그렇기에 오히려 이 분야에 대한 발언은 극도로 아끼는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공장식 축산이나 원전을 찬성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혹자는 이에 대해 '안보'나 '대북' 문제는 그 어떤 문제보다 우선한다고 말할 것이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도 필요한 건 설득이지 사상검증이 아니다. 이런 식의 사상검증은 지지자들의 속을 후련하게 해줄지언정, 다른 사람에겐 환멸만 불러일으킬 것이다. 특히나 이번처럼 명확한 반례가 나온 경우엔 오히려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어쨌든 이번 사건을 통해 조갑제 선생님에 대한 호감이 조금 증가한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최소한 자기가 하신 말은 지키셨으니. 물론 애당초 이런 무리한 일을 벌이신 것 자체가 더 큰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아무도 관심 없던 환경문제를 심층취재한 현장기자, 박정희를 끈질기게 추적한 사생기자(?), 5·18의 광주에 잠입한 해직기자, 한때 '대기자'라는 칭호까지 들었던 기자 조갑제는 도대체 왜 이렇게 추락하게 된 것일까 하는 씁쓸한 뒷맛과 서글픔이 남는다. 관련해서 굽시니스트의 시사인 만화 116호, 117호를 추천한다. 출판이 된 터라 여기 올릴 수는 없겠다.
책을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았다. 냄비 받침으로 쓰라는 분도 계셨고, 다시 반송해 버리라는 분, 불에 태워버리라는 분도 계셨다. 다들 웃자고 하신 말씀이겠지만 이런 경향은 조금 아쉽기도 하다. 나는 <맑스주의 역사강의>와 <누가 금융세계화를 만들었나>, <신자유주의의 탄생>을 갖고 있고, 이 책들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동시에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세계는 평평하다>도 갖고 있다. 중립적인 시각에서 둘 다 보자는 것이 아니다. 개념에 대한 내재적 규정들의 차이를 파악하는 것이 그 개념에 대한 접근을 더욱 엄밀하고 풍성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일종의 지피지기인 셈이다.

그렇기에 책은 읽어 볼 생각이다. 그것도 열심히. 조갑제 선생님께서 요구하신 건 아니지만, 서평도 쓸 생각이다. 어쨌거나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다시 뽑고 싶은 대통령 1위"로 뽑혔고, 조갑제 선생님은 그 신화의 중심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니까.[1]
1. 이 부분은 논란이 될 것 같아 미리 보충하자면, 최근 "다시 뽑고 싶은 대통령"이란 내용으로 두 건의 여론조사가 있었는데, 하나는 2012년 1월 경 온라인리서치 전문회사 리서치패널코리아가 운영하는 '패널나우'에서 진행된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2011년 5월 경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가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에 의뢰해 무작위 자동응답방식으로 실시한 것이다. 전자의 경우 압도적인 차이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1위를 차지했으나, 조사 대상이 '패널나우'의 전 회원이었고, 심지어 연령·지역 등은 아예 묻지 않는 단일 문항이었기에 표본으로서의 가치가 없다.
디지털뉴스부, 2012.01.26, "다시 뽑고 싶은 대통령 1위 故 노무현 전 대통령· 2위 "없다"… MB는?", 『경인일보』,
손봉석, 2011.05.13, "‘다시 뽑고 싶은 대통령’ 1위는 박정희, 2위 노무현",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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