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러시아사] I. 근대 러시아의 탄생: 예카테리나 여제 역사

  I. 근대 러시아의 탄생

  3. 표트르 대제의 농노 정책

  안정적인 제국의 성립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조세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표트르 대제는 세금과 부역의 안정적인 조달을 위해 인구 총조사를 실시하는 한편 적극적으로 농민들을 토지에 결박시키는 정책을 편다. 이를 기반으로 호구세를 인두세로 개편하는 한편 각종 특별세를 부과하여 농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진다. 농노에게 부과되는 세금의 징수 책임을 그들 주인에게 맡겨졌다. 농노는 얼마든지 양도·매각·교환이 가능한 존재로서, 사실상 노예와 다를 바가 없었다.


  4. 예카테리나 2세의 개혁 정치

  잔악무도한 표트르 대제의 전제정치가 끝나고 러시아는 한동안 혼란 상태에 휩싸인다. 이 혼란은 표트르 대제 사후 40여 년 만에 나타난 예카테리나 2세에 의해 비로소 정리된다. 이 여황제의 재임기에는 대체적으로 표트르 대제와 유사한 대대적인 개혁이 이루어졌는데, 그래서 예카테리나 2세는 표트르 대제의 진정한 후계자로 불리기도 한다. 다만 한 가지 큰 차이점은 표트르 대제가 귀족들을 국가에 봉사하는 특권계층으로 사고했음에 비해 예카테리나 2세는 순수한 특권계층으로서 귀족의 권리를 상당부분 확대하고 보장하였다는 것이다.[5]
  혁명을 향한 여정에서 이 시기가 갖는 의미는 대대적인 공업화가 이루어지는 한편 사유재산의 보호가 명문화된 것이다. 수출세가 폐지되어 대외무역이 활기를 띄었으며, 공장 설립 자유령으로 18세기 말까지 약 1,200개의 공장이 생겨났다. 그녀는 이제 신흥 공업의 발전이 국력으로 연결됨을 잘 알고 있었다. 공업에 대한 광범위한 육성과 지원은 새롭게 태동하고 있던 자본가 계급으로 하여금 짜르를 자신들의 대변인으로 생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집권 초기 예카테리나 2세는 스스로 계몽 군주를 자처할 만큼 계몽사상에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재임기에 농노제는 더욱 공고화되었으며, 공업의 육성 또한 농노제를 근간으로 이루어진다. 농노에 대한 착취 또한 더욱 강화되어 러시아 역사상 최대의 농민반란인 ‘푸가초프의 난’을 맞는 원인이 된다. 이 사건 이후 정부와 귀족은 농노와 농민에 대한 억압을 체계화하게 되고, 예카테리나 2세는 계몽사상을 철저히 버리는 한편 농노 해방론자들에 대한 탄압을 시작하게 된다.

<그림 4> 표트르 대제에 이어 the Great의 칭호를 받는 예카테리나 여제
Johann Baptist von Lampi the Elder, 1780년대, <Portrait of Catherine II of Russia>, 캔버스에 유채, 85.5×68cm, 빈 미술사 박물관.
사실 당신들(계몽사상가들)의 논리는 모두 어리석은 국민들의 논리가 아니오? 게다가 그 논리가 프랑스에 영광을 가져다 준 것도 아니지 않소?
- 예카테리나 2세(Ekaterina II, Екатерина II, 1729~1796)
[5] 표트르 대제가 귀족들에게 부여한 부역, 예컨대 행정 관청이나 군에서 복무해야 하는 의무 조항 등이 이 시기 모두 삭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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