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픽 림": 훌륭한 클리셰 사용의 표본 영화와 드라마

  본문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림 1> 주인공 로봇 집시 데인저와 기타 등등
충분히 매력적인 기타 등등의 비중이 너무도 부족하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한 줄 평가: 일본식 특수촬영물을 추억한다면 반드시 관람! 그렇지 않다면...

  <퍼시픽 림>(Pacific Rim, 2013). 작품을 채우고 있는 모든 것들이 진부하고 전형적이다. 아픈 과거를 가진 주인공들, 그런 주인공을 보듬고 때로는 다그치는 엄한 상급자, 주인공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쨌든 실력은 있는 라이벌, 대립하지만 또 협력하는 조연들, 그리고 마침내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주인공... 분명히 어디서 본 듯한 요소가 떼거리로 등장한다. 극을 관통하는 모든 내러티브가 예상이 가능해서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다. 그러나 이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림 2> 디시 성님의 일침
확실히 내용을 미리 알고 가면 재미가 급격히 떨어지는 작품이 있다. 그러나 내용을 알더라도 딱히 감상에는 지장이 없는 작품도 있다. 또 어떤 작품은 내용을 더 많이 알수록 작품이 더 재밌게 보일 것이다.

  단지 내용을 알 수 있고 예측 가능하다고 해서 비판받는다면 세상에 리메이크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연출하느냐이다. 『삼국지』만 하더라도 천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도 없이 다시 쓰이고 읽혔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삼국지』를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적벽에서 조조가 패한다는 것을 알고 봐도 충분히 재밌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림 3> 삼국지연의의 인물들을 여체화한 <연희†무쌍 ~두근두근☆소녀 투성이의 삼국지연의~>
물론 이 정도 되면 말이 달라진다. 무려 왼쪽이 조조고 오른쪽이 초선이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이다. 이야기의 전개가 진부하고 빈약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고 재밌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이야기의 진행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중량감 있는 거대 로봇과 괴수의 충돌, 그것을 얼마나 화려하고 사실감 있게 표현하느냐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밀도 높은 플롯 구성은 이와 같은 특수촬영물에서라면 오히려 관객의 몰입을 흩뜨릴 가능성이 높다. 멜로에서 스릴러가, 가족 코미디에서 사람을 깜짝 놀래는 공포 요소를 웬만해선 녹여내기 힘든 것처럼진부한 이야기 구조는 괴수물·특수촬영물의 장르적 특성이다.

  이 영화는 그러한 진부한 이야기 전개를 잘 만들어내었다는 데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핵심적인 전투 장면 사이사이 딱 필요한 클리셰가 딱 맞게 등장한다. 주인공 간의 우애와 사랑, 라이벌과의 대립, 상관과의 반목. 클리셰가 결코 긍정적인 요소는 아니지만, 클리셰가 클리셰인 것은 그 성능과 효과가 오랜 기간을 거치며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클리셰란 마치 밥과 같다. 매일 먹는 밥이라도 물을 얼마나 넣었냐, 뜸을 어떻게 들였나에 따라 밥맛이 달라지고, 또 같은 밥이라도 반찬이 무엇이냐에 따라 밥맛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특수촬영물이라는 장르는 분명히 이 밥의 역할을 몇 배는 부상시킨다. 마치 간장게장처럼.


<영상 1> 파워레인저의 메가조드
이 느낌을 정확히 계승하고 있다는 것이 최고의 장점인 동시에 이러한 장르에 익숙치 못한 사람들에겐 단점일 것이다.

  분명히 이 작품의 이야기적 만듦새는 썩 훌륭한 편이 아니다. 또한, 개연성과 사실성, 현실성에서도 몰입을 방해하는 장면이 몇 등장한다. 롤리가 파트너로 마코를 선택하는 동기라든가, 마코를 억누르는 상처와 그것을 극복하는 데에는 분명히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했다. 디지털 예거와 대비되는 아날로그 예거의 장면은 극 마지막을 이끄는 중요한 요소임에도 제대로 된 복선이 깔리지 않아 뜬금없기까지 했다. 그 외 배를 휘두르는 장면이라든가 헬기 몇 대로 예거를 나르는 등의 현실성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냥 넘어가자. 그것은 마치 변신 중엔 공격해선 안 되는 것과 같은 이 업계의 상도덕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충분히 용납이 되는 것은 이제까지 이런 장르의 영화 중에서 이 정도라도 해낸 것이 없었기 때문이고, 또 그 전임자 트랜스포머 3 가 너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그림 4> 메가트론과 스타스크림
<트랜스포머 3>는 싸구려 재료로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왜...

  어쨌건 간에 특수촬영물의 '장르적 특성'이라는 표현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면, 이 영화는 분명히 굉장한 인상으로 오랫동안 당신의 기억에 남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화려할 뿐인 유치하고 지겨운 작품으로 그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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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agogy


덧글

  • 대공 2013/08/16 05:37 #

    연희무쌍 왼쪽은 조조
  • 김고기 2013/08/17 01:25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
  • 대공 2013/08/17 05:11 #

    그나저나 초선이 참 잘생겨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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