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평범했던 「자전차왕 엄복동」 영화와 드라마


한국 영화사상 최악의 실패가 될 거란 이야기를 듣고 일부러 극장 관람 기록을 남기고자 상영관을 뒤지고 뒤졌다. 결국 한 시간 넘게 차를 타고 간 끝에 막바지 상영을 겨우 볼 수 있었다.

상영관을 나오며 바로 든 감정은 당황스럽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영화가 의외로 평범하다. (...) 괴작도 아니고 망작도 아닌 정말 그냥 평범한 한국 영화였다. 내 뒤에 나온 사람들도 "재밌는데?" 하면서 가더라. 물론 그들도 당황한 눈치였다. ㅋㅋㅋ

물론 이게 잘 만든, 훌륭한 영화란 뜻은 결코 아니다. 이미 온 세상의 영화 리뷰어와 평론가들이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 것처럼, 널뛰는 동기, 인과의 공백, 뜨는 CG(나는 이 문제가 특히 거슬렸다), 서로 조화가 안 되는 서사, 왜 있는지 알 수 없는 캐릭터와 장면, 무엇보다 도무지 스릴이란 게 없는 자전차 경주 장면 등 분명히 눈에 띄는 문제는 수두룩하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영화적 완성도가 심각하게 어그러지거나 도저히 보고 있기 힘들 정도의 괴작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사실 이 정도의 단점은 <인천상륙작전>이나 <국제시장> 같은 (소재는 다르지만) 동류의 영화부터, 심지어는 <극한직업>이나 <신과함께> 시리즈 같은 흥행작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다.

완성도와는 별개로 시류를 잘 탔다면 어쩌면 300만, 500만은 가능하지 않았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쪽 업계의 신화라고 할 수 있는 <디 워>보단 확실히 나았고, 진정한 천만 영화 <해운대>에 비해서도 나쁘단 생각은 그리 들지 않았으니 말이다. 극장을 나서면서는 영화라는 상품의 흥행과 완성도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확실히 이상할 정도로 평범한 영화다. 그러니까 전형적인 캐릭터에 전형적인 사건, 전형적인 서사에 갈등마저 전형적이다. 논란이 된 신파나 국뽕마저도 너무나 전형적이고 평범해서, 그런 종류라면 인상부터 찌푸려지는 내가 봐도 크게 거슬리지 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크레디트 마지막의 "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 창립작품"이란 말을 보면서 이 생각은 어느 정도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런 역풍을 맞을 줄 상상이나 했으랴.

굳이 엄복동을 애국단과 엮어 미화할 게 아니라 사실 그대로 나타냈으면, 그러니까 본인은 전혀 의도도 관심도 없었지만 의도와는 다르게 많은 조선 사람들을 감화하고 고양했던 역설적인 상황, 영웅이라 추앙받았지만 말년엔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 시대적 배경을 그대로 나타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평면적인 인물상이 대다수인 일제강점기 시대극에서 굉장히 신선한 이야기가 탄생하지 않았을까. 물론 투자사 입장에선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군함도>의 전례가 필요 이상의 평면화를 이끌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든다.

어쨌든 최종 성적은 17만. 확실히 상업 영화로서는 정말 처참한 실패다. 한국 괴작계의 역사를 새로 쓴 그 <리얼>이 47만이었고, 비슷한 소재로 나온 괴작 <대장 김창수>도 38만은 찍었으니 말이다. 참고로 17만이란 숫자는 2018년 기준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 2> 관람객의 절반 정도고, <런닝맨: 풀룰루의 역습>보다도 1만이 적다...

<리얼>의 기념비적인 훨윈드 장면.

이 정도의 대실패는 정말 이례적인데, 단순히 모객에 실패한 정도를 넘어 확실한 '보지 말아야 할 이유'가 확실히 제시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정말 별생각 없이 상영작 중 아무거나 골라 보는 사람들이 영화를 알아보고 일부러 피했단 의미다.

아무리 이쪽 업계가 악플보다 무플이 무섭다고 하지만, ① 초창기 '자전거 도둑' 사건이 알려지며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된 것, ② 일제강점기 시대극에 대한 지겨움, ③ 소위 국뽕물에 대한 적극적 관람층의 반감, ④ 주연 배우 취중고백의 연타가 종합적으로 작용하며 이런 결과가 나온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물론 이 모든 원인이 모여 이 영화를 까는 게 하나의 밈이 되어버린 게 가장 크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직접 보고 나니 그 유행이 좀 과했단 생각도 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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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꽤제제한 얼음왕 2019/03/16 15:42 #

    선입견없이 킬링타임으로 괜찮아 보였는데 꽤 볼만한가 보네요 후기 잘 읽었습니다.
  • 김고기 2019/03/16 23:50 #

    어어... 그게 사실 볼 만하냐고 물으면 볼 만하다고 대답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냥 지금까지의 광풍은 과했단 말은 할 수 있을 정도의 평범한 영화였어요...
  • 비블리아 2019/03/16 18:41 #

    아무 생각없이 지은 영화제목도 한몫 했다고 봅니다.
    제목만 봐도 "애국심 마케팅으로 팔아먹으려 작정한 영화구나" 라고 선입견을 줘 버리니까요.
  • 김고기 2019/03/16 21:22 #

    의외로 영화 내 국뽕 요소가 과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것마저 평범했어요... 말씀하셨듯이 <군함도>의 전례처럼 마케팅 실패가 한몫을 하지 않았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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