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잠!」: 왜 한국과 미국의 평가가 갈릴까? 영화와 드라마


<원더우먼> 전까진 끔찍한 영화만 찍어내던 DC가 이제 슬슬 영화 만드는 법을 깨달은 듯하다. 이번 <샤잠!> 역시 큰 틀에서의 구성은 흠잡을 게 많지 않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사실은 얘들도 착했어요!"나 <배트맨 대 슈퍼맨>의 "울엄마사!"를 생각하면 비교하기도 미안할 정도. 그런데 "훌륭한 영화였나?"라고 묻는다면 또 그렇지 않다. 아쉬운 점이 참 많은 영화였기 때문이다. 재밌는 건 한국과 미국에서의 반응이 크게 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역사적 사건이나 문화적 코드를 다루는 게 아닌 이상 대중의 반응은 당연하고 평론가나 전문 리뷰어의 반응은 어떤 지점으로 수렴하는 게 지금까지의 주된 경향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 <샤잠!>은 미국에서는 호평 일색이지만 한국에서는 호평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1. 인지도와 배경지식의 문제

미국에서 샤잠의 인지도는 결코 만만하게 볼 수준이 아니다. 애초에 탄생부터가 1940년으로, 그 슈퍼맨과 2년 차이이고 심지어 캡틴 아메리카보다도 먼저 데뷔했다. 캡틴 아메리카가 선전용으로 끌려다니며 이런저런 부침을 많이 겪었던 데 비해 샤잠은 꾸준히 어린 세대의 큰 지지를 받으며 계속 이어져 왔다. 한때 코믹스 판매량에서 슈퍼맨을 제쳤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말 그대로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아들 세대 모두가 보고 자란 캐릭터란 뜻이다. 특히 평소엔 어린아이지만 히어로로 변한다는 설정은 뭇 어린이들의 환상을 자극하기에 더없이 완벽했을 것이다. 애초에 자신의 폭력성에 대해 고뇌하는 자본가가 밤마다 가면을 쓰고 범죄자를 두들겨 패는 것보단 이쪽이 히어로 장르의 본질에 훨씬 더 가깝지 않겠는가.

하지만 한국에서 샤잠의 인지도는 어떨까? 굳이 답이 필요하진 않을 것 같다. 사실 오랫동안 DC의 코믹스와 애니메이션을 봐왔던 나조차도 저스티스 리그를 보면서 샤잠에 대해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게 다였다. 더불어 미국 코믹스 문화 자체가 한국에선 오랫동안 일종의 하위문화였고, 그나마 이름을 알린 캐릭터는 모두 정식 수입·방영된 TV 애니메이션이과 영화의 성공에서 비롯되었단 점을 생각하면 사실상 이번 <샤잠!>이 한국에서의 첫 샤잠이라고 생각해도 무리는 없으리라 본다.

영화에 대한 주된 혹평은 너무 유치하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확실히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이러한 점이 한국의 관객들에게 더욱 크게 와 닿는 것은 히어로 영화에 대한 인식이 마블 영화로 자리잡은 점, 즉 히어로 영화라고 해서 히어로라는 장치에 모든 전개를 맡기는 게 아니라 다른 장르적 장치로 서사를 진행하는 것과 연관이 있으리라 본다. 그러니까 히어로라는 장치를 빼고 봐도 하나의 영화로서 충분한 완성도를 가지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윈터 솔져>에서 정점을 찍고 이후 <앤트맨>과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도 훌륭한 성취를 보여주었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샤잠!>이 DC 영화 중에서는 최초로 이런 시도를 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히어로 요소를 제외한 <샤잠!>의 전개는 전적으로 (미국식) 가족 영화, 청소년 성장물의 장르적 문법─가족을 부정하던 아이가 끝까지 자신을 포기하지 않은 가족의 도움으로 사건을 극복하고 가족의 일원이 되는─을 따르고 있다. <구니스>와 <빅> 등을 직접 차용하거나 오마주한 요소도 보인다. 그런데 아뿔싸, 아쉽게도 이 코드는 가족의 개념이 급격하게 바뀌고 있는 오늘날의 세태에선 사뭇 유치해 보이지 않기가 쉽지 않다. 사실 샤잠은 캐릭터 자체도, 그리고 영화가 차용하고 있는 장치도 유치함을 피해가기가 어렵다.

<샤잠!>을 호평한 미국의 기성 매체는 '가족'을 중요한 키워드로 다루고 있다.
반대로 유튜버를 비롯한 개인 리뷰어들은 '원작 재현'을 높이 평가한 경우가 많다.


2. 영화 자체의 완성도 문제

유치하다는 건 무엇일까? 보통 수준이 낮거나 미숙하다는 걸 의미할 텐데, 여기서 수준의 기준은 나이를 의미할 테다. 미숙의 '숙'은 아예 성숙을 전제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유치하다는 건 어린아이들이나 보고 좋아할 정도의 수준이라 말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어린아이들이 보고 좋아한다고 해서 다 유치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 누구도 <토이 스토리> 시리즈나 <니모를 찾아서>를 보고 유치하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전자와 후자를 가르는 건 단순히 메시지의 깊이보다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의 완성도, 더 직접적으로는 작품의 연출 수준을 꼽을 수 있겠다.

<샤잠!>은 이 연출의 측면에서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 감독이 자기 하고 싶은 걸 너무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거 같은 7대 죄악의 모습에서부터, 도무지 같은 사람이 몸만 바뀐 것이라고 보기 힘든 캐릭터의 차이, 배트맨이 그래도 사람은 잘 팼구나 싶은 허우적 액션, 무엇보다 너무도 일차원적인 악당의 모습은 메시지의 깊이에 한계가 있는 아동용 영화라고 하더라도 넘어가기가 힘들다. 이런 신화적인 존재를 자꾸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는 한 근원적인 유치함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면 너무 MCU에 익숙해진 생각일까?

<샤잠!>의 미국에서 호평은 관객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잘 보여줬기 때문이다. 애초에 평가의 영역이 달랐고, 평점의 기본값이 달랐다. 미국의 히어로 영화 관객들에게 샤잠은 충분히 익숙한 캐릭터였고, 따라서 캐릭터 자체의 유치함은 마이너스 요소가 아니라 당연히 보여줬어야만 하는 요소였다.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보고 싶었던 걸 봤다면 나머지는 말 그대로 조금 아쉬운 수준에 그치기 마련이다. (반대로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관객들이 보고 싶어 하던 걸 제대로 안(못) 보여줬기에 어마어마한 혹평을 받은 것이고.) 또한 어설프게 원작을 뒤틀고 어두운 분위기를 만들고자 캐릭터까지 바꿔버린 기존 DCEU 작품에 대한 팬들의 반작용도 무시할 수 없을 테다.

무엇보다 가족 관념에 대한 미국인들의 애정은 더 말해 무얼 하랴. 매번 느끼지만 스필버그로 대표되는 가족 영화에 대한 미국인들의 애정은 확실히 남다른 바가 있다. 세태를 반영해 가족의 해체를 다루는 이야기조차 결국 새로운 가족, 진정한 가족을 만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걸 보면 말이다. 특히 포브스USA Today 같은 기성 매체가 이 부분을 언급하며 높은 평가를 준 것은 결국 가족 코드가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한국의 히어로 영화 관람층에 이러한 가족 코드가 효과가 있었을까? 일단 나에게는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작품 곳곳을 채우고 있는 미국식 유머와 더불어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가족 테마라는 문화적 코드가 이 작품에 대한 평가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미국의 관객들은 샤잠을 보기 위해 <샤잠!>을 봤고 한국의 관객은 히어로 영화를 보기 위해 <샤잠!>을 봤다는 것, 이 점이 바로 양국에서 평가가 갈리는 가장 본질적인 차이가 아니었을까.


demo.egloos
@Demagogy


핑백

  • 키노 이 이그라 :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대한 소소한 감상평 2019-04-24 21:36:36 #

    ... 막 작품인 &lt;로건&gt; 역시 비슷한 시도를 했고, 경이로운 성공을 거두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경험이 쌓여서 그런가 이런 것에 괜히 감동을 받는다. ・앞서 &lt;샤잠!&gt;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미국 영화계의 가족에 대한 애정은 정말 대단한 수준이다. &lt;엔드게임&gt;도 가족으로 시작해서 가족으로 끝났고, 갈등과 동기의 ... more

덧글

  • ChristopherK 2019/04/16 10:39 #

    인지도가 높지 않은 히어로가 한국에서 중박을 치려면.. 데드풀 수준이 되어야겠죠.
  • 김고기 2019/04/16 16:48 #

    사실 데드풀도 문화적 코드만 따지자면 한국에서 성공하기 어려울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한국에서 히어로 장르의 주된 관객이 그런 류에 익숙한 사람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탓에 <샤잠!>의 가족 코드가 더 힘을 못 쓴 것 같고요.
  • 포스21 2019/04/16 18:53 #

    뭐 제가 본 바로는... 유머가 양키센스...여서 그런거 같네요. 우리정서엔 좀 안맞는 느낌?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구글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