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러시아사] 대개혁과 농노 해방 역사


II. 러시아 제국의 굴절

3. 대개혁과 농노 해방

표트르 대제 시기 비약적인 국가 발전의 기반이었던 농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러시아 발전을 옥죄고 있었다. 18세기 이후 상당 기간 농촌의 단위 생산량은 변함이 없었으며, 1860년을 기준으로 러시아의 헥타르당 식량 생산량은 영국의 40%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 지주들은 농노에 대한 심한 매질과 낮은 급료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결과는 번번이 실패로 끝나고 만다.

한편 19세기 중반을 넘어설 때부터 러시아에서는 이미 혁명의 기운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1860년에만 해도 농민을 중심으로 한 폭동이 108건이나 발생하였다. 짜르 정부의 인사들조차 농노제를 폐지하지 않으면 러시아 전체가 무너질 수 있음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1861년에 이르러서 알렉산드르 2세(재위 1855~1881년)는 마침내 농노제 폐지를 공식적으로 선포하게 된다. (사유 농노의 해방은 1861년, 국유 농노의 해방은 1866년에 이루어진다.)

<그림 8> 사진 작가 라우페르타가 촬영한 젊은 체르니솁스키의 모습(1859년).
투철한 혁명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그의 소설은 급진적인 젊은 세대들에게 큰 인기를 모았다.

머지않아 이곳에는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혁명이 시작되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들을 따르겠다.
─체르니솁스키의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 중에서

해방된 농민들이 공장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거액의 배상금이 공업발전 자금으로 사용되면서 수공업 공장이 기계 공장으로 대체되기 시작한다. 이로써 1880년대 말 러시아에서는 산업혁명의 기초가 완성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농노 해방은 본질적으로 큰 결함을 가진 한계적인 조치였다. 그것은 바로 토지개혁에 관한 것이었다.

농노들은 해방령을 통해 자유를 얻고 자신의 땅을 가질 수 있었으나 지주들에게 땅값을 지불해야 했다. 정부는 이들에게 융자를 지원하여 땅값을 지불하게 했는데, 그 상환이 49년에 이를 정도였다. 급진주의자들은 농민들이 무상으로 토지를 받지 못한 것에 큰 불만을 표시했다. 여전히 농노들은 공공 부역과 같은 의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러시아의 농민은 자유를 획득한 그 순간 이미 모든 것을 박탈당했다.
─블라디미르 레닌(Владимир Ленин)

국가의 저곡가 정책은 해방 농노의 궁핍화를 가속화하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토지의 분배가 농노 개개인이 아닌 ‘미르’라고 불리는 농촌 공동체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해방이 되어서도 여전히 농노는 자유롭지 못했고, 생산성향상의 효과도 미미한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특히 농촌의 과잉인구가 방출되지 못한 것은 농촌과 도시 양쪽 모두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었다.[9]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대개혁으로 인해 러시아의 봉건제는 형식적으로는 막을 내리게 된다. 그와 동시에 러시아는 대대적인 현대화를 추진한다. 행정과 경제, 문화를 포함해 사회의 전 영역이 자고 일어나면 변해 있던 시기였다. 1880년대 말에는 18,500km의 철도가 새로 개설됐으며, 강에는 증기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또한 공장제 공업은 수공업을 대체해 주요 공업 부문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했으며 석유, 기계 제조와 관련된 신흥 산업이 출현했다.

<그림 9> 영화 <안나 카레니나>(2012)의 키티와 레빈.
시골 지주인 레빈은 매번 모스크바에 올 때마다 너무 많은 것이 변했다며 놀란다.

오늘날 바로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바뀌고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막 새롭게 준비되고 있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 주인공 레빈의 말 중에서

레닌의 표현대로 ‘상상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나던 이 시기에도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전제정이었다. 알렉산드르 2세는 전제정에 해가 되는 그 어떤 의견도 용납하지 않았다. ‘농노 해방’은 전적으로 통치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눈부신 발전의 한편에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확산되고 있었고, 나로드니키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의 근본적인 변혁을 그리기 시작한다. (계속)

<그림 10> 농노 해방령을 읽고 있는 농노들의 모습을 묘사한 먀소예도프의 그림.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그림이지만,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아 아쉬웠다. 혁명사를 발표·강의할 때 나는 항상 이 그림을 프롤로그로 쓴다.
그림: 그레고리 먀소예도프, 1873, <2월 19일 선언문 낭독>, 캔버스에 유채, 138.2×209cm, 모스크바 트레차코프 미술관.


[9] 1861년 농노 해방 이후 러시아의 인구는 급격히 증가하여 1917년에 이르러선 1861년에 비해 약 2.4배에 달한다. 이 때문에 농촌의 궁핍화는 더욱 심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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